<영혼과 육체의 상처입은 치유자,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영혼과 육체의 상처입은 치유자,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 Pius of Pietrelcina (1887-1968), 기념일 9월 23일
- 카푸친 작은 형제회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알려진 비오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풀리아의 산조반니 로톤도 수도원에서 사목적 열정으로 봉사 직무에 헌신하면서, 신자들의 영성을 지도하고 참회자를 화해시켰으며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보살피고 기도와 겸손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섬겼다. 그는 1918년부터 196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상처를 온전히 몸에 지니고 고통을 느꼈다.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시성하셨다.
십자가와 고해소와 병원
199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피에트렐치나(Pietrelcina)의 성 비오의 시복식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상을 받은 그의 몸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잘 나타냅니다. 이는 파스카 신비의 특징입니다. 피에트렐치나의 복자 비오는 특유의 열정으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의 탁월한 학교이며 그 원천입니다. 고통으로 정화된 이 충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은 복음으로 이끌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우리에게 선사하시고자 하신 바로 구원의 복음입니다.. 복자 비오를 만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신앙을 되찾았습니다. 또 그의 모범에 영감을 받아 세계 도처에서 기도 모임이 생겨났습니다.
그를 보러 달려온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는 주님의 몸을 들어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성화시키는 일 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의 나약함과 고통을 그냥 보고 있지 못했고, 마치 상처위에 연고를 바르듯 사랑을 발랐습니다. 결국 파드레 비오(Padre Pio)는 사람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그들의 고통 때문에 산 죠반니 로톤도(San Giovanni Rotondo)에 '고통을 더는 집(Casa Sollievo della sofferenza, 종합병원)'을 지었습니다. 그는 이 병원이 최고 수준이기를 바랐습니다. 그 수준이란 무엇보다도 따뜻한 배려와 진심어린 보살핌으로 환자를 대하는 참 '인간다운' 의술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를 더욱 간단하게 표현했다. "영혼들을 가르키고 고통을 덜어주는 일, 이것이 바로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의 사명입니다." 산 죠반니 로톤도 형제회 성가대석에 있는 피투성이 십자고상과 한 쪽에 위치한 자그맣고 소박한 고해소, 그리고 최고 수준의 병원건물.. 이것들은 몸과 영혼의 치유자인 페에트렐치나의 성 비오의 두드러진 상징이다.
환시를 보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꼬마
카푸친 형제로서 사람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을 이 위대한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는 1887년 5월 27일, 남이탈리아의 해안가 근교 '피에트렐치나' 라는 작은 마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라치오 포르지오네(Forgione)이고, 그의 어머지는 마리아 요세바 데 눈지오(de Nunzio)이다. 그의 부모님은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 농장에서 힘들게 일했다. 사실 그는 일곱 형제의 세번째였으나, 한 명의 형과 누나가 유아 때 사망하는 바람에 다섯 형제 사이의 둘째가 되었다. 위로 한 명의 형과 아래로 세 명의 여동생이 있는 셈이다.
태어난 다음 날, 그는 성녀 안나의 성당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릴 때 그는 그곳에서 복사를 섰고, 열 두 살이 되어서 견진성사와 첫 영성체를 했다.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서 자라난 덕분에 어린 프란치스코 포르지오네는 신심이 깊었다. 그는 성가 부르기와 혼자서 '미사 놀이'를 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큰 돌을 베개 삼아 맨바닥에서 잤고, 매 맞으신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쇠사슬로 몸을 채찍질을 하기도 했다.
만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를 예수님께 봉헌했다. 프란치스코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예수님과 성모님, 수호천사를 보았다. 그리고 악마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는 이 사실을 어른이 되어서야 고백했다. 왜냐하면 당시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경험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수염 있는 형제(수도자)가 되고 싶어"
프란치스코의 부모는 1897년에 처음으로 아들이 카푸친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다. 당시 카푸친 평형제인 카밀로 형제가 구걸을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그 지방을 다녔는데, 프란치스코는 그 거룩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는 부모에게 "수염 있는 형제(frate)가 되고 싶어" 라고 말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의 부모는 반대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받은 3년간의 교육만으로는 카푸친 사제가 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남미와 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했다.
결국 만 15살이 되던 해, 프란치스코는 모르코네(Morcone)에 있는 카푸친 수련소에 들어갔다. 1903년 1월 22일 착복식 날, 그는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형제' 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동기수련자들과 양성장들은 비오 형제의 모범적 태도와 경건함에 깊히 감탄했다. 한 동기수련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는 다른 수련생들과 구별 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겸손했고 묵상에 잠겨 있었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비오 형제에 관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바로 '기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1904년 1월 25일, 비오 형제는 유기서약을 한 뒤, 여러 지역 형제회를 돌며 고등학교 교육을 마쳤다. 그리고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907년 1월 27일, 그는 산텔리아 아 피아네지(Sant'Elia a Pianisi) 카푸친 형제회에서 종신서원을 발했다.
비오 형제는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수호성인인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신심을 가질 것을 가르쳤다. 그의 가족들은 무언가 필요할 때에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로 알려진 성 프란치스코에게 기도하곤 했다. 수련자일 때 비오 형제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글, 특히 회칙을 공부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훗날 그는 사람들에게 성 프란치스코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모범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재속프란치스칸들을 영적 보조 해주는 것에 썼다. 이러한 비오 형제의 사랑과 신심에 보답이라도 하듯 성 프란치스코는 비오 형제에게 두 번 나타났다. 쇠약한 몸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신학생 시절, 그때 그는 카푸친을 떠나야 할지 많은 걱정을 할 때였다. 이럴 때 성 프란치스코가 나타나 그를 안심시키고 위로해주었다.
1922년, 비오 형제는 영적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카푸친 성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니 제가 쓸모있는 성 프란치스코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빌어주세요. 그러면 완전한 카푸친이 되고자 하는 열정이 제 안에서 자라나 형제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거룩한 사제, 완전한 희생제물
종신서약을 한 후, 비오 형제는 다시 신학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1908년 5월, 건강 때문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엄청난 열병에 시달렸다. 그는 장상들의 특별 허가로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신학공부를 이어갔고, 1910년 8월 10일, 베네벤토(Benevento)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다.
첫 미사를 거행한 1910년 8월 14일, 그는 자신의 사제 서품을 기념하며 이렇게 썼다. "임금님.. 제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작은 청입니다. 아울러 제 사람들을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에스테르기 7장 3절) 나의 첫 미사 기념; 저의 열망이시며 저의 생명이신 예수님, 오늘 떨리는 손으로 사랑의 신비 안에서 당신을 들어 높임으로서 당신과 함께 하여, 세상을 위해서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 되게 하시고, 당신을 위해서는 거룩한 사제이자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소서." 이는 훗날 비오 형제가 역사상 첫번째로 오상을 받는 사제가 되리라는 놀라운 예언적 말이었다.
병에 시달리는 비오 형제
비오 형제는 건강 문제로 카푸친 형제회로 돌아오지 못한 채 피에트렐치나의 집에서 부모와 함께 6년을 더 머물러야 했다. 그는 고열 외에도 천식성 기관지염에 평생 동안 시달렸고 신장 결석으로 인하여 극심한 복통에도 자주 시달렸다. 또 만성 위염으로 고통 받았고 안염과 비염, 이비인후염으로도 고생했다. 그는 형제회 바깥에서 죽게 될까봐 매우 걱정했고 이 시절엔 특히 극심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 받았다. 1915년 여름 그는 징집이 되었지만 건강때문에 몇 번이나 집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1916년, 그는 병역에 적합하다고 여겨져 나폴리(Napoli)시에 있는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1917년에 폐결핵 진단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내면적 고통
비오 형제의 육체적 고통은 영적인 고통으로 인해 더 배가되었다. 그는 자주 하느님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악마는 절망과 자만심으로 그를 계속 유혹했고 물리적으로 폭행을 가한 적도 많았다. 악마는 '빛의 천사' 로 둔갑해 나타나 사악한 속임수를 쓰기도 했고, 영적지도자에게 주고 받은 편지들을 없애버리거나 편지들의 내용을 바꾸어버려 그에게 고뇌를 가중시키기도 했다. 그의 영적지도자인 산 마르코 인 라미스(San Marco in Lamis)의 베네딕토 형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악마는 벌거벗고 춤을 추는 처녀들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나 수사들의 젊은 친구로, 영적지도자 신부 혹은 관구봉사자 신부로, 교황 비오 10세로, 수호천사로, 성 프란치스코나 성모님으로 나타납니다."
비오 형제는 자신의 정신 상태와 환시가 불러일으킨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고, 예수님과 성모님과 수호천사와 성 요셉,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전구와 보호를 끈질기게 청함으로써 실제 환시들과 환각을 구별할 수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악마의 물리적 공격을 묘사했다. "악령들이 나에게 화를 낼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허락해 주신지가 벌써 22일이나 지났습니다. 신부님, 원수들의 매질로 인해 저는 지금까지 계속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그 놈들이 날 때리기 위해 내 옷을 몇 번이나 벗겼는 줄 모릅니다."
사랑으로 상처 입은 형제
고통 가운데에서 비오 형제는 하느님과의 신비적 일치에로 발전해 나아가고 있었다. 1911년, 그는 보이지 않은 오상을 받았다. "어젯밤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손바닥 한 가운데에 일 센트 동전 크기의 빨간색 상처가 나타났는데, 그 상처 중심에 통증이 너무 강합니다. 특히 왼손의 통증이 더 강합니다. 지금도 아픕니다. 두 발에도 약간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그는 이 상처에 신경이 쓰였고 그 안에서 엄청난 부끄러운 감정이 일어났다. 그는 주님께 이 흔적들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고, 그 흔적들은 당분간 사라졌다. 1916년, 비오 형제는 오랜 요양과 군복무로 인해 중단되었던 수도생활에로 복귀하였다. 그는 산 조반니 로톤도의 언덕에 있는 조그만 카푸친 형제회에서 살았고, 카푸친 소신 학생들의 영적 지도와 고해사제로 활동했다.
신비가들은 가끔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를 드러내는 영혼과 심장의 꿰뚫림(transverberatio)의 영적 현상에 대해 말한다. 비오 형제 또한 그 현상을 체험했다. 1918년 여름, 베네딕토 15세 교황이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비오 형제는 이에 응했고 자신을 희생자로 내세웠다. 1918년 8월 초,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그의 옆구리를 꿰뚫으셨다. 그때부터 비오 형제의 옆구리에 상처가 생겼다.
저는 예수님의 오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해 9월 20일,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비오 형제는 그의 고해사제 '산 마르코 인 라미스의 베네딕토 형제'에게 보낸 1918년 10월 22일자 편지에서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지난 달 20일 아침, 미사를 집전한 후 가대석에서 그만 단잠과 비슷한 졸리운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저는 8월 5일 저녁에 뵈었던 분과 비슷한 신비스러운 분을 뵈었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그 분의 손발과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몹시 무서웠습니다. 그 때 느꼈던 것을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심장이 마치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것만 같았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내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저는 죽었을 것입니다. 환시는 사라졌고, 저는 저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지금도 이렇게 매일 겪고 있는 괴로움을 상상해 보세요. 옆구리 상처에서 지속적으로 피가 납니다. 특히 목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저는 그 상처와 제 영혼 깊은 곳에서 생기는 난처함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멈춰달라는 저의 애원을 외면하신다면 저는 출혈로 죽을것 같습니다. 두렵습니다. 선하신 예수님께서 저에게 그 은총을 내려주시겠지요? 적어도 외적인 이 상처가 주는 이 난처한 상황에서 저를 구해주시겠지요? 저는 목소리를 높여 이 외적인 상처를 없애 달라고 그분께 계속 청하겠습니다. 고통 자체를 없애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고통받기를 바라고 있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훗날 조사 때, 그는 신비스러운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기까지 50년을 넘게 지체하셨다. 비오 형제는 이 놀라운 비밀을 지키고자 했으나 곧바로 밖으로 퍼져나갔다. 비오 형제의 가장 두드러진 은사는 오상이었지만, 그외에도 치유, 방언,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능력,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는 능력, 공중 부양,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예언, 탈혼, 환시, 음식이나 잠에 대한 비범한 금욕, 마음을 읽는 능력과 상처들에서 풍기는 향기들과 같은 수많은 다른 은사도 받았다.
시련 가운데에 순종하다
1919년 초반, 오상에 대한 소식이 바깥에 퍼지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을 다시 꾸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비오 형제에게서 희망의 표지를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상 받은 사제를 보기 위해 산 조반니 로톤도로 몰려왔다. 그 중 비오 형제의 오상을 살피려드는 의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조사관 중에는 교회로부터 정식 권한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의 권위자들은 비오 형제를 떠받드는 광신자들의 행동을 걱정했다. 초기 조사관 중에는 교회로부터 매우 존경받는 수도 사제도 있었는데, 그는 의사이며 오늘날 시성 대기자이기도 하다. 1920년 그가 산 조반니 로톤도에 왔을 때, 비오 형제는 교황청의 허가증 없으면 상처를 보여줄 수 없다며 그를 거부했다. 이에 화가 난 그는 비오 형제가 '사람들의 맹신을 이용하는 무식하고 자학적인 사이코패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으로 인해 교회는 오상을 비롯한 비오 형제를 둘러싼 모든 현상들을 믿지 말라고 했다. 또 다른 여러 부정적인 보고서들이 바티칸에 제출되었고, 결국 1931년 5월, 교회는 비오형제에게 고해성사와 미사 집전을 금지시켰다. 1933년과 1934년 사이에 그 규제가 점차적으로 철회되었지만, 또 다른 혐의들이 잇따랐기에 비오 형제는 다시 한 번 교회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거짓 고소들, 진실 왜곡과 부당한 사목 규제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비오형제는 이 모든 것에 순종했다. 그는 모든 규제가 철회될 때까지 교회와 장상들의 명령에 끝까지 순명했다.
'기도하는 가난한 형제가 되고 싶습니다'
비오 형제는 60년간의 수도생활의 대부분을 산 조반니 로톤도에서 보냈다. 그 삶 안에서 그는 기도와 고해성사 및 영적 지도에 헌신했다. 비오 형제가 선종한지 3년도 안 되어 바오로 6세 교황이 했던 말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요. 세상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요! 왜 그런걸까요? 그가 뛰어난 철학자여서, 혹은 재산이 많아서 그랬을까요? 그게 아닙니다. 그는 미사를 경건히 지내고 아침부터 밤까지 고해성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상을 지녔으며 참으로 기도하고 고통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오 형제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기도하는 가난한 형제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기도문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속적이면서도 때로는 고통스러운 하느님과의 대화였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때라도 멈추지 않고 그는 기도했다. 기도 안에서 오랜 시간 하느님께 버림받는 메마름을 체험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기도했고 하루 온 종일 하느님과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책 안에서 하느님을 찾지만 그분을 발견하는 곳은 기도 안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기도하십시오. 온 세상이 기도를 필요로 하니 나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매일 기도하시고, 특히 마음이 외로울 때 기도하십시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십니다. 그러니 다 함께 기도합시다."
"미사의 위대한 신비를 보지 못하시는 겁니까?"
거룩한 미사는 비오 형제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미사는 그에게 사제요 희생제물이신 예수님과의 가장 긴밀한 친교를 가지는 시간이었다. 그는 새벽 12시 30분이나 1시에 일어나 미사시간이 되었냐고 묻곤했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 몇시간을 묵주기도를 바치며 미사 준비를 했다. 새벽 4시가 되면 제의실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또 1시간을 미사준비를 했다. 새벽 5시가 되면 그는 마치 예수님께서 해골산에 오르셨듯이 제단에 오르곤 했다. 미사 집전 중에 그는 지속적으로 울었다. 왜 우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이렇게 적은 눈물이 아니라 홍수같은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미사의 위대한 신비를 보지 못하는 겁니까?"
비오 형제는 일반 사제들과 똑같이 미사를 거행했다. 하지만 그 열정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미사 중 그의 표정은 열렬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창백하게 변하기도 했다. 그는 자주 울었으며 육체적인 아픔을 느꼈다. 미사는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미사 동안에 그는 분명 그리스도의 수난을 체험하고 있었다. 이에 매료된 신자들은 강렬한 은총속에서 회개하며 하느님께 돌아왔다. 비오 형제에게는 미사가 전부였다. 그는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미사 없이 존재하는 것보다 태양 없이 존재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또 그는 이렇게 썼다. "좋으신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저의 심장은 터질듯이 뜁니다. 정말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것만 같습니다. 제단에 서면 정말 설명하기 힘든 큰 불길을 느낍니다. 그 불길이 내 얼굴을 태워버릴것만 같습니다."
다른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나의 얼굴과 마음이 화염속에 있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불은 유익한 것입니다. 저는 티 없는 아드님의 살의 단맛을 모두 맛보았습니다. 아.. 다시 한 번 그분을 마음으로 품을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그 순간 저는 분명히 천국에 있는 것일겁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얼마나 황홀하게 해주시는지, 아.. 그분은 얼마나 달콤한지요!"
하지만 그 위안은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고통을 전부 제거하지는 못했다. "저는 저의 이 고통을 덜어보고자 제의를 입고 미사를 바치러 제단으로 나아갑니다. 미사 거행동안, 정확히 축성 때에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위안을 주십니다. 그러고는 다시 쓴맛으로 되돌아가게 하시지요.. 거룩한 미사는 저와 예수님의 성스러운 일치입니다. 당치도않게 그분은 당신 구원사업에 저를 동참시켜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분께서 겪으신 모든 것을 겪습니다."
비오 성인의 미사는 아주 길었지만 그는 오래 서있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저는 서 있는 것에 전혀 지치지 않습니다. 저는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성체 때에 하느님과의 신비스러운 일치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미사 후에 주님께 대한 감사로 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미사를 마치고 저는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 아.. 오늘 아침, 그분과의 대화는 얼마나 달콤했는지요.. 이런 표현을 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저의 심장은 예수님의 심장과 하나가 되었답니다. 두 심장이 아니라 하나의 심장이 뛰었습니다. 저는 마치 바다 속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융해되어버렸습니다. 기쁨의 눈믈이 흘러내렸습니다."
거칠지만 헌신적인 고해사제
비오 형제는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 온전히 순응했다. 그 열매는 고해성사에 대한 헌신으로 나타났다. 비오 형제는 고해성사를 주기 위해 아침부터 오후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어떤 날은 14시간을 고해소 안에 있기도 했다. 당시 풍습에 따라 고해성사는 남녀가 따로 받았다. 제의실에서는 남자들이, 고해실에서는 여자들이 성사를 받았다.
고해성사를 주는 일은 비오 형제의 주된 사도직이었다. 고해성사 중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이 고백할 용기가 없을 때 그는 자주 그들의 죄를 먼저 열거하곤 했다. 비오 형제는 사람들에게 매주 고해성사를 받을 것을 권했다. "고해성사는 영혼의 목욕입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매주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영혼들이 일주일 이상 고해성사를 받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쓰지 않는 깨끗한 방도 먼지를 뒤집어씁니다. 일주일 지나 들어가보면 먼지가 쌓여있습니다. 먼지를 털어내야 합니다."
고해성사 중에 비오 형제는 사람들에게 거칠게 질타를 하기도 했다. 하루는 한 남자가 비오 형제한테 고해성사를 받으러 갔다. 그때는 1954년에서 1955년 사이쯤이었다. 그가 자신의 죄를 다 고백하자, 비오 형제는 "고백할 것이 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은 "없습니다. 신부님" 하고 대답했다. 비오 형제는 또 물었다. "고백할 것이 더 있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없습니다. 신부님" 하고 말했다. 비오 형제는 세 번째로 그에게 "고백할 것이 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세 번째에도 고백할 것이 없다고 하자 폭풍같은 일이 벌어졌다. 비오 형제가 성령의 소리로 "당장 나가! 당장! 자네는 죄를 뉘우치고 않고 있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 사람은 당황스러워 어쩔줄을 몰랐다. 그가 무슨말을 할려고 하자 비오 형제가 말했다. "그만해, 수다쟁이. 자넨 충분히 말했어. 이젠 내가 말할 차례네. 자네는 디스코텍에 다니고 있지?" "네, 신부님." "춤 추러다니는 것이 죄를 불러들인다는 것을 아는가?" 남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그의 지갑에는 디스코클럽 멤버쉽 카드가 있었다. 그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한 후에 힘겹게 용서를 받아냈다.
하지만 비오 형제는 다른 고해사제들에게 자신의 경우를 본받지 말라고 했다. 그가 사람 마음을 읽고 때로는 거칠게 고백자를 대하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초자연적 은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고해사제들이 비오 형제처럼 행동한다면 역효과를 나을 것이다. 몇몇 형제들이 동시대의 유명한 고해사제 '헤르젝 노비의 성 레오폴도'에 대해 말하며 그의 온화함을 알려주었을 때, 비오 형제는 '가장 까다로운 죄인들을 나에게 보속으로 보냈기 때문에 레오폴도 형제가 온유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농담을 했다.
영혼들의 지도자
비오 형제는 훌륭한 고해사제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영적 식별의 은사를 가니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영적지도자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영적지도자들에게도 영적인 조언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비오 형제를 하느님과 매우 가까운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 비오 형제는 힘겹게 얻어낸 자신의 영적 체험으로 영혼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분명한 비오 형제의 지시에 사람들은 단호한 결정을 내릴수 있었다. 그는 영적인 것을 구체적인 사례들에 잘 적용시켰다. 사람들을 충고하거나 격려할 때 그는 늘 분명하고 솔직했다. 또 사람들의 고민과 슬픔, 어려움에 진심어린 자세로 임했고 그들이 진보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외에 그는 악마의 속임수를 알아채는 능력, 은총의 활동과 하느님의 총애를 분별하는 능력, 유혹에 동요되고 괴로워하는 영혼들을 진정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은사를 통해 그의 영적 지도는 언제나 최고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에게는 영적 발전을 위한 다섯 개의 규칙이 있었다. 매주의 고해성사와 매일의 영성체, 영적 독서와 묵상, 그리고 양심성찰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쓴 영적지도 편지에 이렇게 나와있다. "걱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작아집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비오 형제의 영적지도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기도하고 희망하며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 비오의 프란치스칸 영성
비오 형제의 영성과 신심과 기도는 전형적인 프란치스칸의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그의 사랑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신심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육화와 그분의 모친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신심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거룩한 수감자'이신 성체 안 예수님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다.
골고타 산을 거쳐 타볼 산에 오름
비오 형제는 어렸을 적에도 분명 그리스도 수난 신심을 가졌던 것이 틀림없다. 어렸을 때 그는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고픈 마음에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채찍질했다. 이를 본 어머니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때려 피가 나게 했듯이 나도 그렇게 하는 거야."
비오 형제는 평생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리스도의 속량사업에 협조할 부르심을 받았다고 의식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빼고는 우리는 그의 거룩함을 이해할 수 없다. 한 번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궁극적인 목표에 성공적으로 다다르기 위해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친히 따르셨던 길, 즉 자기희생과 십자가의 그 길을 통해서 당신이 선택한 영혼을 이끌고자 하십니다."
비오 형제는 타볼 산의 영광을 수난의 신비와 관련시키기를 좋아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죽음과 쇠못들과 가시들, 고통과 기이한 어둠, 그리고 버림받음과 까무러침만이 보이는 해골산에 먼저 올라야 합니다."
오! 거룩한 밤이여!
비오 형제는 주님의 파스카 신비(수난과 부활)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육화 신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그도 성탄절과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몹시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 그는 10월부터 일찌감치 찰흙으로 구유를 만들었다. 또 동료 형제들은 비오 형제가 고해성사를 주면서도 구유를 직접 볼 수 있도록 성당 안 구유가 고해실 맞은편에 세워지기를 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비오 형제는 구유 속 아기 예수님을 보고 자주 눈물을 흘렸다. 아기 예수님에게서 매우 애틋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적어도 두 명의 증인이 성탄성야 미사 전에 빛에 둘러쌓인 비오 형제를 목격했다. 그는 빛에 둘러 쌓인채 아기 예수님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밝히기를 꺼려했으며 목격자들에게도 봤던 것을 절대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산 조반니 로톤도 형제회의 수호자는 비오 형제가 성탄성야미사 집전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성탄전야 미사를 집전할 특권을 베풀었다. 어느 날, 비오 성인은 자신의 고해사제에게 이렇게 썼다. "하늘의 아기가 그 조그만 구유에 뉘어지던 그 복된 밤에 그분께서 체험하게 해주신 이 모든 거룩한 감정을 우리 형제들도 느끼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그 행복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감실에 갇히신 분
비오 형제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몹시 사랑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감실 앞에서 그분을 조배하곤 했다. 그가 성체조배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음은 다음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천 년을 즐겨 누리는 세상 영광일지라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나누는 이 달콤한 한 시간의 대화보다 값어치가 없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가톨릭교회만이 사람들에게 참된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평화의 임금이신 예수님을 가톨릭교회의 성체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톨릭 교회에 늘 가까이 머무르십시오."
작은 엄마
2009년, 산 조반니 로톤도를 찾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비오 성인의 성모 신심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성모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성모님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비오 성인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자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그는 ‘아씨시의 그 작은 빈자’처럼 복되신 동정녀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주님께서 여기 산조반니 로톤도, 은총의 성 마리아의 성지인 이곳으로 성인을 이끌어주셨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고 죽어서도 이곳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비오 성인은 성모님의 보호와 전구의 힘으로 온전히 자신의 삶을 맡겨진 소명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고통을 더는 집' 또한 ‘치유'이신 성모님의 사업으로 여겼습니다."
그가 직접 쓴 성모님에 대한 글은 매우 적다. 마리아 무염시태에 관한 짧은 묵상 글과 편지 속에 쓴 참조 구절이 다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방법으로 성모님에 대한 사랑을 증거했다. 그것은 바로 일생동안 바쳐온 묵주기도이다. "묵주기도를 하루에 몇 번 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그는 "온전한(15단) 묵주기도를 하루에 35번 이상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실천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그 횟수에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이 기도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 "당신은 왜 그만큼 기도할 수 없는 거죠?"라고 되묻기만 했다. 그 대답을 미루어보아 비오 형제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인생 말년까지 그는 묵주를 항상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묵주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마음의 평화, 악에 대한 승리,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그의 신심은 어린이처럼 단순했고 애정으로 가득 찼다. 그는 성모님을 ‘맘미나(Mammina, 작은 엄마)’라고 불렀다. 1959년, 파티마의 성모상이 이탈리아로 왔다. 그날 비오 형제는 흉막염으로 중태에 빠져있었다. 포지아(Foggia)에서 거행되는 파티마 성모님 예식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행사 일정이 바뀌어 순례 성모상이 산 조반니에 오게 되었다. 8월 6일 아침, 비오 형제는 앓는 몸으로 성당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성모상에 입을 맞추고 황금 묵주를 봉헌했다. 그날 오후, 일정을 마친 파티마 성모상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위해 헬리콥터에 실려 성당 상공을 날았다. 비오 형제는 헬리콥터를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성모님, 나의 엄마, 이탈리아에 오셨는데 저는 병이 들고 말았네요. 병든 저를 두고 이제 떠나시는군요!" 말을 끝내자 그는 몸의 떨림을 느꼈고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병이 다 나았어요!" 실제로 그의 병은 말끔히 치유되었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쳤다.
미사를 거행할 때 그는 실제로 십자가 밑에 서 계신 성모님을 만나곤 했다. 그는 이 신비스러운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드님을 봉헌하시기 위해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예수님의 어머님께서 어떻게 제대 위의 신비스러운 해골산에는 안 계실수가 있겠습니까?" 임종 할 때 비오 형제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거룩한 이름을 계속 되풀이하여 불렀다. 또 비오 형제는 성 요셉과 성 프란치스코와 수호천사에 대한 신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다.
하루 일과
비오 성인은 모든 공동체 기도를 형제들과 함께 바쳤고, 건강 상태가 허락하는 데만큼 형제회의 일과를 충실히 따랐다. 그는 보통 새벽 2시나 3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새벽 5시 미사 때까지 기도와 묵상 안에서 미사를 준비했다. 미사 후에도 그는 감사기도를 하기 위해 가대석에 머물렀다. 그러고나서 점심때까지 고해성사를 주었다. 정오에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에 마당에 나가서 30분정도 휴식을 취한 뒤 짧은 낮잠을 잤다. 형제들과 낮기도를 바친 후, 그는 또 가대석에 남아 개인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편지 쓰는 시간을 잠시 가진 뒤, 오후 4시 30분까지 고해성사를 주었다.
4시 30분이 되면, 그는 형제들과 모여서 저녁기도와 성체 강복식을 거행했다. 그 다음 10분에서 15분 동안 마당에 나가서 쉰 뒤, 형제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1950년부터, 그는 오직 하루에 30그램의 음식물만 섭취했다.) 해가 질 무렵에 그는 몰려든 사람들을 강복했고, 저녁때엔 사제들과 의논을 하거나 시내에서 강의를 하거나 혹은 답장 편지를 하곤 했다. 밤이 되면 형제들과 함께 끝기도를 바쳤다. 그 후 형제들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그는 불면증에 시달려 새벽 12시 45분까지 성경을 보거나 기도를 했다. 새벽 1시 30분쯤이 돼서야 그는 잠을 청했다.
휴식 시간에 비오 성인은 형제들이나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주곤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나 흉내를 곧잘 내었고 사람들이 자신의 농담에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사려깊고 친절했다. 또 지나친 열정으로 인해 형제들을 속상하게 할 때면 늘 용서를 청했다. 누군가 예의있게 행동하거나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에 그는 매우 감동했다. 또 그는 친절한 행동과 기쁨의 대화를 대단히 귀하게 여겼다. 특히 그는 소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매우 상냥했으며 마치 아버지처럼 그들을 보살폈다.
고통을 더는 집
성 비오의 애덕은 집 안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깥 세상에까지 널리 퍼졌다. 그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고쳐주곤 했다. 그의 전구기도로 많은 병자들과 장애인들이 치유되었다. 하지만 병자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의료적 관심으로 더 나타났다. 당시 산 조반니 로톤도에는 변변한 의료 시설이 없었다. 1925년에 그는 그곳에 요양원을 세울 생각을 했다. 그는 기부금을 모아서 예전 형제회 건물을 병원으로 개조했다. 그 병원의 이름은 '성 프란치스코의 시립 병원'이었다. 두 칸의 병실과 의료 장비, 8명의 병상을 갖추었지만 불행히도 1938년의 지진으로 모두 다 부서져버렸다.
1940년, 비오 형제는 형제회 옆에 종합병원을 지을 생각을 하였다. ‘병원 봉사자들이 하느님 은총의 협조자임을 환자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병원’, 이것이 바로 비오 형제가 생각하는 병원의 모습이었다. 기부금이 세계 도처에서 들어왔다. 1957년, 비오 12세 교황은 비오 형제가 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가난 서원에 대한 의무를 관면해주었다. 1947년, 공사가 시작되었고, 1956년에 공사를 끝내고 개원을 했다. 1년 후, 비오 형제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병원이 육체적 고통만을 덜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곳은 그저 여러분의 후원으로 일구어낸 모범적인 치료소일 뿐일 것입니다. 이곳은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베푸는 사랑을 통해서 환자들은 하느님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묵상하고 고통을 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이곳은 하느님의 사랑이 머무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 병원은 '고통을 더는 집(Casa Sollievo della Sofferenza)'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개원 당시 250대의 병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1,200대 정도로 늘어났다. 비오 형제는 ‘고통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 받는 이들의 십자가를 함께 져주었다. 깊은 동정심으로 그들과 함께 고통 받음으로써 그는 ‘키레네의 시몬(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준 사람)이 되었다.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를 위한 기도모임
비오 11세 교황과 비오 12세 교황은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위해 신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그에 따른 기도 모임을 장려했다. 비오 형제는 이러한 교황의 호소에 제일 먼저 응답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는 이미 1920년 때부터 몇몇의 사람들과 산 조반니 로톤도 형제회의 손님방에서 정기적인 기도모임을 하고 있었다. 10여명의 지역주민 여성들은 기도하기 위해 형제회 손님방으로 모였고 비오 형제는 그들에게 교리와 성경을 가르쳤다. 성경에 기초를 둔 기도모임은 1920년대 당시에는 가톨릭 교회에 참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1940년, 비오 형제는 ‘고통을 더는 집’의 설립 협조자인 굴리엘모 산구넷티와 함께 이 기도모임을 재조직하여 발전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파드레 비오 기도모임’이 되었다. 파드레 비오 기도모임은 교구 주교가 임명한 사제에게 영적 지도를 받아야 한다. 비오 형제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함으로써 사적인 주도권으로 인해 기도모임의 취지가 왜곡되는 것을 확실히 피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드레 비오 기도모임은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를 위한 모임’이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계적으로 2,700여개의 파드레 피오 기도 모임이 존재한다. 이 기도모임은 비오 성인의 자선 사업에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기도 모임은 한 달에 4번 모임을 가지며, 미사와 묵주기도를 하고 성경을 묵상한다.
교회와 교황에게 충실한 사람 비오 성인은 바티칸 2차 공의회를 거친 두 분의 사제 시성자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와 교황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이것은 1968년 바오로 6세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드러난다. 사실 바오로 6세 교황은 비오 형제의 사목 제안을 모두 거부한 교황이었다.
"미소하고 보잘 것 없지만 성하의 아들 중에 꼴찌인 제가 성하께 저의 기도와 고통을 봉헌합니다. 작은 저의 봉헌이 영원한 진리를 수호하시는 성하께 하느님의 은총이 머무는데 쓰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Humanae Vitae' 회칙에서 선언하신 성하의 말씀에 대해 저는 저의 영적 자녀들과 기도모임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성하의 그 권고에 조건 없는 순종을 재차 확인합니다. 저희 카푸친 형제들과 영적 자녀들, 기도모임과 저의 환자들을 강복해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하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도 강복해주시길 겸손히 청합니다."
당시 공의회 후, 개혁된 전례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교황은 비오 형제의 나이와 병약함의 이유로 트리엔트 예식 미사를 계속 바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애정 어린 효자
비오 형제의 부모는 ‘마리아 파일(Pyle)’이라는 비오 형제의 미국인 영적 딸의 집에서 말년을 보냈다. 비오 형제는 오상의 고통 때문에 걷기가 힘들어서 노새를 타고 마리아의 집으로 부모를 찾아가곤 했다. 1928년 12월 5일, 비오 형제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산 조반니 로톤도로 왔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그때 두 모자가 나눈 대화에 잘 드러난다. 어머니는 상처 입은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손에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 "비오 신부님, 리베라 이모와 펠레그리나 이모, 필로메나 이모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손에 입 맞추어요." 비오 형제는 손을 빼며 말했다. "안돼요. 아들이 어머니 손에 입을 맞추어야지 어머니가 아들 손에 입을 맞추다니요!" 1929년, 비오 형제가 70살 되던 해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비오 형제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다. 어머니의 죽음에 비오 형제는 넋을 잃고 울었다. 그로부터 17년 뒤 1946년, 그의 아버지도 만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이 그에게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럽냐고 물으면 그는 아들에 대한 애정으로 눈가가 젖곤 했다.
비오 형제의 말년
1959년, '은총의 성모님' 성지성당이 예전 형제회 성당 부근에 건설되었다. 당시 나폴리 출신인 한 여인은 새 성당의 축성식이 성인의 죽음을 알리는 징조임을 확신하고는 매우 괴로워하며 비오 형제를 찾아갔다. 하지만 비오 형제는 다음과 같이 안심시켰다. “아닙니다. 나는 지하성당을 축성할 때 죽을 겁니다.” 비오 형제가 말한 그 지하성당은 1968년에 성당 지하를 파서 완공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장님 친구인 베드로치오에게 82세가 되는 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비오 형제는 82세가 되는 해에 죽었다.
1960년대 내내, 비오 형제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어갔다. 1968년 9월 21일, 비오 형제의 오상 5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사람들이 산 조반니 로톤도로 몰려왔다. 하지만 비오 형제는 건강악화로 인해 매우 지쳐있었다. 다음날 22일, 비오 형제는 대미사를 집전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여 수호자에게 평미사로 대신할 것을 청했다. 수많은 순례자들을 본 수호자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비오 형제는 순종의 정신으로 대미사를 거행했다. 미사를 마친 비오 형제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쓰러졌고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 미사는 비오 형제가 집전한 마지막 미사였다.
1968년 9월 23일 새벽, 비오 형제는 고해성사를 받고 서원을 갱신했다. 그리고 새벽 1시쯤에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계속 묵주를 손에 들고 있었지만 더 이상 성모송을 소리 내어 욀 수 없었다. 그는 "Gesù, Maria(예수, 마리아)" 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새벽 2시 30분경 비오 형제는 "두 명의 어머니(비오 형제의 어머니와 성모님)를 봅니다!"라고 하고는 마지막 숨을 다하여 "마리아"하고 속삭였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에는 십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비오 형제는 "나는 죽고 난 후에 더 많은 일을 할 겁니다. 나의 참사명은 죽음 후에 시작될 거예요." 라는 말했다. 비오 형제의 예언대로 그의 죽음과 동시에 오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시신은 ‘은총의 성모성당’의 지하에 안치되었다.
시복과 시성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곧 비오 형제의 시성운동이 착수되었다. 그리고 그는 1999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2002년 6월 16일에 같은 교황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보이티와, Wojtyla)은 1948년에 산 조반니 로톤도로 가서 비오 형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고 교황이 되기 훨씬 전이었다. 1962년, 주교가 된 보이티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 중 자신의 동료 '봔다 폴탑스카(Wanda Poltawska)' 박사가 심각한 종양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술을 준비중이었지만 목숨이 위태로웠다. 보이티와 주교는 곧바로 비오 형제에게 편지를 보내어 기도를 부탁했다. 이 소식을 들은 비오 형제는 잠시 침묵을 가진 뒤 "이 부탁을 사양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11일 후, 보이티와 주교는 또 한 통의 편지를 비오 형제에게 보냈다. 폴탑스카 박사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완전히 나았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 3월 3일, 선종한지 40년이 된 비오 형제의 유해가 공개되었다. 교회의 공식 성명에 의하면, 시신은 상당히 괜찮은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얼굴에 부패가 있었기에 실리콘 마스크로 가려졌다. 2010년 4월 19일, 비오 형제의 시신은 은으로 된 관에 안치되었고 산 조반니 로톤도에 새로 만들어진 ‘성 비오 성당’ 지하에 모셔졌다. 매년 칠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성 비오의 무덤을 찾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떤 다른 성인보다 성 비오에게 더 기도한다. 비오 성인은 세계의 가장 인기있는 성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처음으로 한국 카푸친들에 의해 설립된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단위 형제회는 ‘서울 비오 형제회’이다. 비오 성인을 수호성인을 모시고 있는 비오 형제회는 한 달에 한 번 서울 효창동 '천사들의 성 마리아의 카푸친 형제회'에서 모임을 가진다. 한국 카푸친은 성인의 일등급 유해와 피 묻은 붕대를 보존하고 있다.
비오 성인은 카푸친 성인들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성인이다. 그렇지만 우리 카푸친들에게 그는 여전히 기도하는 작은 형제요, 고통받고 순종하는 수도자이다.
"기도합시다. 온 세상이 기도를 필요로 하니 나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매일 기도하시고 특히 마음이 외로울 때 기도하십시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기도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다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는 책 안에서 하느님을 찾지만 그분을 발견하는 곳은 기도 안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기도하고 희망하며 걱정하지 마십시오!"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오상의 성 비오의 격언들>
가정
1. 집으로 꿀을 나르는 작은 꿀벌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들의 집안에 온유, 평화, 조화, 겸손, 자비가 넘치게 하십시오.
2. 가장 중요한 극기는 가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간택된 영혼
3. 곤궁, 십자가 등은 언제나 간택된 영혼의 상속 재산이요 숙명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영혼을 완전함으로 올리시면 올리실수록, 그 영혼에게 십자가와 곤궁을 더 크게 키워 주십니다.
감사
4. 자기 가족을 결코 어렵게 두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5. 기도가 늘 이루어지지만은 않을 때,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러한 은총을 주시지 않을 때란 아마 여러분이 그분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를 드리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여러분의 중죄를 묻지 않으시려고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더라도 그분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걱정
6.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행위를 모두 사랑으로 감싸 줍니다. 한편 지나치게 신뢰만 하고 있으면 조심을 하지 않고 위험에 빠지는 수가 있습니다. 걱정과 신뢰는 다 있어야 하고 서로 보완해 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걱정이 많을 때 우리는 신뢰하는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신뢰가 단호하다고 느낄 때, 올바르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겸손
7. 겸손과 정결은, 하느님께로 올라가서 그분을 흠숭하는 날개입니다. 부끄러운 행위로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선행을 하고서도 겸손해 하는 그리스도인보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서서 창피를 당하게 됩니다.
8. 익어 가는 밀밭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이삭은 뽐내며 위를 치켜 보고 서 있지만, 어떤 것은 고개를 숙여서 겸손하게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까이서 보노라면 자랑스럽게 똑바로 선 이삭은 거의 쭉정이인데,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 이삭은 무르익은 알갱이 무게로 구부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만과 겸손을 말하는 멋진 광경입니다.
경건
9. 가장 보기 역겨운 것은 가벼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향해 경건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기쁜 마음으로 대해야 하며, 가정에서는 평화의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경외
10.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분에게 불충할지 모른다는 걱정 말고는 겁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경외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사람들은 결코 하느님을 겁내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만큼 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셨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하느님 마음의 통로를 만드는 열쇠입니다. 오직 기도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고요
11. 만일 우리의 마음이 고요하고 참을성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하느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고통
12.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면서,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고통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13.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물론 고통을 감내하는 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비결이 있습니다.
14. 나는 고통을 사랑합니다. 고통을 위한 고통이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께 고통 받을 수 있기를 간청했고, 그 고통에서 생겨나는 열매 때문에, 또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이 주시는 영광 때문에 고통을 열망합니다. 내 고통을 통하여 우리 형제들이 구원되고, 불쌍한 연옥 영혼들의 고통이 단축될 것입니다.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15. 마음에 간직한 채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공로가 되고, 고상하며, 좋은 것입니다.
16. 세상의 예찬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합니다.
고해성사
17. 고해성사는 영혼의 목욕탕입니다. 최소한 매주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아야 합니다. 영혼들이 일주일 이상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18. 청소를 해 둔 방은 비록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일주일 뒤에 가 보면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기 때문에 다시 청소해야 합니다.
교만
19. 베드로 성인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그분을 부인하는 위기에 처해졌을 때, 그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잘못이라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스승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던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0. 인생살이에서 교만을 일삼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맞먹으려 합니다. 그러나 위험에 직면해야 비로소 자신이 최고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
21. 세상의 모든 종파는 가톨릭교회로부터 부양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가톨릭교회는 크고 값진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습니다. 거기서 끊임없이 파편이 떨어져 나와(나쁜 원수의 장난이 없지는 않지만), 훗날 큰 원석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이 반짝임이 사람들을 꾀어서 속이고 장님으로 만들었다가, 뒷날 다른 이가 이사기극을 재연할 때쯤, 떨어져 나온 파편들은 필연적으로 빛을 잃으며 끝나고 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구원
22. 기도하십시오. 마지못해서라도 기도하십시오.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적게 기도하는 사람은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벌 받을 것입니다. 의지를 보시고 상을 주시는 것이지,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23. 기도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그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선택은 그대의 몫입니다.
그리스도인
24.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가 없습니다.
기도
25. 사람은 책 안에서 하느님을 탐구할 수 있으나, 발견하는 것은 오직 기도 안에서입니다.
26. 하느님은 올바른 지향과 선한 의지로 하는 기도이면 무엇이라도 좋게 받아들이십니다.
27. 기도는 우리 최고의 무기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28. 기도라는 거룩한 선물은 주님께서 주신 첫 손가락에 꼽히는 선물입니다.
29. 나는 오래 전부터 가까운 유력 인사의 주선으로 어떤 혜택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은 아무것도 못해요. 내 아들, 다만 위에 계신 그분만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지요.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나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30. 오, 주님! 저의 과거를 당신의 자비에, 저의 미래를 당신의 섭리에.
31. 주님, 저를 비우셔서 당신으로 채우소서.
기도에 대한 선물
32. 주님은 기도에 대한 선물을 오른손에 쥐고 계십니다. 주님은 욕망에 얽힌 애착에서 우리가 해방된 정도에 따라, 또 고집을 버리고 삶을 겸손의 터전 위에 세우는 정도에 따라 우리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기쁨
33.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그분은 당신의 피조물 안에서 기쁨을 누리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기쁨을 그분 안에서 발견하도록 합시다.
끈기
34. 기도는 끈질겨야 합니다. 끈질김은 믿음을 의미합니다.
두려움
35. 사랑과 두려움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사랑 없는 두려움은 비겁이요. 두려움 없는 사랑은 불손입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모를 때 그것은 사려 깊지 못하고 제멋대로입니다.
마귀
36. 유혹이나 걱정, 불안 등은 나쁜 원수가 만드는 짓거리들입니다. 마귀가 활동한다는 것은 그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당하겠다는 승낙을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37. 나는 여러분의 얼굴을 거울 안에서 보듯이 환하게 알아봅니다. 나는 또 여러분이 말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귀가 시킨다고 내게 감추지 마십시오. 마귀는 도둑과 같습니다. 그는 정체가 폭로되는 즉시 뺑소니칩니다. 유혹이 오거든 당장 내쫓으십시오, 유혹은 타는 불과 같아서, 오래 쥐고 있을수록 손가락은 더 타게 됩니다.
말씀
3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 깊게 지켜 충실히 따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무미건조
39. 내적 기쁨 중에 어떤 것은 유치합니다. 그것들은 영적 완성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쁨보다는 고통이 필요합니다. 내적으로 무미건조함, 불안감, 무기력함이야말로 참된 사랑의 상징입니다.
묵상
40.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더럽다는 것도 모르고 외출하지요. 하지만 묵상하고, 생각을 영혼의 거울이신 하느님께 향하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알아내려 하고, 고치려 하고, 충동을 조절하고, 양심을 가지런히 합니다.
41. 묵상 중 감명이 없거나 생기지 않을 때, 굳이 감명을 얻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만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묵주기도
42. 카푸친회의 시복 시성 조사 청원자인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 신부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수도원 장상이 비오 신부에게 묵주 기도를 매일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다. 비오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장상께는 진실을 말해야겠지요. 34번 정도 하고 있습니다!”비오 신부에게 묵주 기도는 세계를 위한 주님의 구원 계획을 묵상하는 기회였다. 그는 늘 예수님과 마리아의 삶에서, 환희와 고통과 영광의 신비 정신 안에서 맴돌았다.
43. 저녁이면 비오 신부님은“나의 무기!”,“나의 검(劍)!”,“라 미아 스파다!”(La mia spada)라고 하던 자신의 묵주를 손에 들지 않고는 그 짧은 밤의 휴식에 들어가지 않았다.
미사
44. 태양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미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45. 묵상과 신익을 위해 미사에 참여할 때, 골고타의 십자가 아래서 성모님의 고통에 동참하십시오.
보속
46. 어떻게 보속하는 것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십자가를 사랑과 순종의 정신으로 짊어지는 것입니다.
봉사
47. 주님께 봉사할 때는 평화 안에서 하시길 바랍니다. 억눌린 슬픔 같은 것은 세상사람들의 것이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는 기쁨으로 봉사하십시오!”
48.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바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
49. 어디서 온 것이든 사랑은 언제나 같은 어머니의 작품입니다. 하느님 섭리의 작품인 것입니다.
50.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준비해야 합니다.
51. 나의 아들들아,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이 처하신 곤궁과 고통, 그리고 십자가 위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52. 나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53. 고통과 사랑, 이것이 비오 신부님의 영적·신비적 길의 특징입니다.
54. 십자가를 양식으로 하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푸라기 불에 지나지 않습니다(1915년).
55.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고통 받는 것입니다(1915년 7월 1일).
56. 사랑은 고통 안에서 드러난다(예수님께서 발현 중에 비오 신부에게 하신 말씀).
사제
57. 어느 날 다른 이들로부터 비난을 들어 실의에 빠진 한 동료가 비오 신부에게 하소연하자,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사제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을 정말 모르겠어요?”
선택
58. 인간의 모든 생각 안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조금씩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좋은 것만 가려내어 보존하고 나쁜 것은 내던져야 합니다.
59. 신앙에 관한 토론은 하지 않는 법입니다. 신앙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배척하십시오. 타협은 없습니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60.“죽을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을 사랑할 것인가?”비오 신부님을 이끈 주제의 하나입니다.
섭리
61. 섭리의 시계는 인간의 시계보다 늦습니다.
성덕
62. 성덕이란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정욕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과 세상의 일들을 진정으로 그리고 꾸준히 멸시하여, 빈곤이 부유함에 우선하고, 겸손이 명성에 우선하며, 고통이 쾌락에 우선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덕이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덕이란 우리를 저주하고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에게도 덕을 베풀 만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1915년).
성모님
63. 나는 성모님을 그분의 공로에 합당하게 사랑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성인과 천사들을 모두 합쳐도, 성모님을 그분의 공로에 합당할 만큼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64. 비오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 몇몇 동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한말씀 해 주시지요, 신부님!”비오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성모님을 사랑하세요. 성모님을 사랑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세요. 늘 묵주 기도를 바치세요!”
65. 임종 순간까지 비오 신부님의 입에 맴돈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습니다.“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1968년 9월 23일 새벽).
66. 예수님의 십자가를 언제나 안아 주십시오. 그분께 위안을 드리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하늘의 성모님께 늘 가까이 있으십시오. 그분은 아침노을 건너편 기슭에 있는 영원히 빛나는 왕국으로 가는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성 요셉
67. 요셉 성인이 예수님께 드린 것과 같은 애정과 키스를 당신에게도 보내시기를 빕니다.
68. 요셉 성인께서 당신의 영혼을 사랑과 넓은 도량으로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과 도량으로 예수님을 양육하고 지켜 내셨습니다. 그분이 당신의 영혼을 더 난폭한 헤로데인 마귀로부터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성화
69. 성화되어 성화하라!
수난
70. 동정녀이신 성모 마리아는 아드님의 수난을 당신의 영혼과 육신으로 함께 감내하셨습니다.
순명
71. 순명이 없는 곳에는 덕성도 없습니다. 덕성이 없는 곳에는 선행도 없습니다. 선행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하느님도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안 계신 곳에는 천국도 없습니다.
시간
72. 오직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을 소중히 여깁시다. 매 순간을 허비하지 맙시다. 다가오는 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련
73.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는 이상,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따금 우리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숨기시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나가는 시련이고, 주님께서 원하실 때 이 시련은 그치는 법입니다.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며 더없이 관용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74. 시련은 잠시뿐입니다. 겨울은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폭풍이 사나울수록 영원한 봄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시작
75. 오늘 우리 자신에게 자주 이렇게 말합시다.“내 영혼아, 아직까지 못했던 좋은 일을 바로 시작하자.”하느님의 현존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합시다.“하느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나의 행위로 나를 판단하신다.”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합시다.“그분은 우리 안에서 좋은 것만 보신다.”
신뢰
76. 겸손한 가운데 신뢰심을 가집시다. 예수님은 아이들과 함께 계실 때 기쁨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겸손하게도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모두들 내게 오라!”고 하신 그분을 신뢰합시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빛을 묵상한다면 인생을 알고 지킬 수 있게 됩니다.
77. 주님의 마음은 선과 친절과 사랑밖에 모르십니다. 여러분은 자주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의탁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78. 우리가 하느님께 신뢰를 가지고 청하면 하느님은 우리를 거절할 수 없으십니다.
십자가
79. 비오 신부님의 삶은 오로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80. 보시오. 모두 내게 와서는 자신의 십자가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단지 몇몇만이 십자가를 짊어질 힘을 달라고 간청합니다.
81. 우리는 사랑으로‘골고타’를 올라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곳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82. 십자가가 여러분을 으스러뜨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무겁기는 하지만 힘이 있어서 똑바로 서 있을 것입니다.
83. 예수님은 당신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 십자가의 작은 한 조각만을 지고 가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84. 십자가 없는 예수님도, 예수님 없는 십자가도 있을 수 없습니다.
85. 십자가, 이 달콤한 말!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그분의 발아래서 영혼들은 빛의 옷을 갈아입고 사랑에 불타며 가장 높이 비상하는 날개를 받습니다(1915년 7월 1일).
역경
86. 역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역경은 영혼들을 십자가의 발아래로 인도하고, 십자가는 그 역경을 하늘의 입구로 지고 가서 그분을 만나게 해 줍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역경도 영복의 길로 이끄신 것입니다.
영성 생활
87. 영성 생활에 진보가 있을수록 피곤함을 덜 느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천국의 전주곡은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개방하고자 자제하는 만큼, 우리는 행복해지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강해집니다.
88. 영성 생활에서 후퇴하지 않고 전진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추어 있는 배는 바람에 밀려 후퇴합니다.
용서
89.“하느님께서 오늘 밤에 나를 데려가시거든, 동료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게. 나와 그대들에게 끼친 내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말일세.”(1968년 9월 22일 임종 전날)
위안
90. 최고의 위안은 기도에서 옵니다.
91. 사람들한테서 위안 받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감실로 가십시오. 거기서 여러분의 마음을 털어놓으십시오. 위안은 거기서 찾을 것입니다.
92. 십자가의 무게가 당신 어깨에 너무 무겁다 싶거든, 하느님께 구하여 위안을 받으십시오.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올리브 산에서 아버지에게 짐을 가볍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거든 고개를 숙여 예수님처럼 말하십시오.“피앗(Fiat).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위탁
93. 천상 어머니의 팔에 당신을 맡기십시오. 어머니는 당신의 영혼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은총
94. 은총의 풍성함은 기도의 열기에 달려 있습니다.
95.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따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순종하는 마음으로라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강하게 해 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을 마련하신다는 생각만 해도 위안이 됩니다.
인내
96. 거룩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상급은 시작만 좋은 사람이 아닌, 끝까지 이겨 낸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멋지게 시작했고 잘했으나, 끝까지 이겨 내지 못하고 결국 배신했던 유다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97. 이 모든 것을 조용히 견디어 내십시오.
자비
98.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자비를 입습니다.
99. 주님은 때로 우리가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그 무게가 참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해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자비로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결
100. 하느님은 정결의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을 어여삐 보십니다. 사도답게 한번 말해 보십시오.“나를 강하게 해 주시는 그분 안에서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를 안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무력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예수님의 팔에, 십자가의 팔에 내던진 다음 그분이 황공하게도 우리를 올려 주실 때까지 겸허하고 끈기 있게 기다립시다.
주님의 길
101. 순박한 가운데 주님의 길을 걷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불필요하게 자신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사랑은 평화를 의미합니다.
천국
102. 하느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시면서 사막을 통하게 하시든, 꽃밭을 통하게 하시든 그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중요한 것은 거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천사
103. 천사는 언제나 순종합니다. 거룩한 천사를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를 그들에게 위탁해 두셨습니다.
104. 천사가 우리에게 부러워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고통만이 한 영혼에게 이렇게 말할 자격을 줍니다.“나의 하느님, 보십시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105. 수호천사는 우리만의 반려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겉으로만 고독할 뿐입니다. 수호천사가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 뜨기 전부터 하루 종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수호천사가 우리에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요!
축복
106. 밤의 정적을 통해, 내 독방의 고독 안에서 나는 자주 손을 들어 여러분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우리의 교부이신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누누이 여러분을 부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107.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일 뿐입니다.
투쟁
108. 위대해지려면 강해져야 합니다. 인생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투쟁입니다.
109. 인생은 아름다움보다는 고통으로 끝나는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입니다. 겟세마니 동산의 예수님과 벗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평화
110. 평화를 누리십시오. 하느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은총 중에 있는 한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련한 이 세상이 볼 수만 있다면, 모든 죄인과 불신자들은 그 자리에서 회개할 것입니다.
111. 우리 구원의 원수는, 마음에 평화가 바로 하느님의 도우심 안에 있다는 표징임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원수는 우리에게서 그 평화를 뺏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112.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나의 성찬이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나의 기쁨이요 일용할 양식입니다.
현명한 사람
113. 현명한 사람은 진리를 탐구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 진리를 안다고 착각합니다.
회개
114. 기억하십시오. 죄를 뉘우치는 사람은 선행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습니다.
115.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으시지만, 그분을 사랑하는 우리의 성실한 마음만은 자가당착 없이는 부정하지 못하신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왜 과거 때문에 괴로워해야 합니까? 그러나 우리의 회개가 하느님 마음에 들려면, 우리는 겸손하게 평화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희생
116. 기도가 들어질 때마다 치러진 희생이 얼마였던가!
117. 마음이 착한 사람은 강합니다. 그는 고통스러워도 눈물을 감춥니다. 그는 이웃과 하느님께 자신을 희생하여 위안을 얻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나날이 성장하도록 한 걸음씩 나아가십시오.
희생양
118. 저의 숨결이자 생명이신 예수님, 사랑의 신비에 떨면서 당신을 높이 들어 올리는 오늘, 저로 하여금 당신과 더불어 세상을 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사제이신 당신을 위한 완전한 희생양이 되게 하소서(1910년 8월 11일 사제수품 후 첫 미사 때).
https://blog.naver.com/jogaewon/220119299474
<영원한 집을 세우는 돌>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의 서한에서
장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집을 세우시려고 돌들을 마련하시어 구원의 정으로 끊임없이 깎고 부지런히 다듬고 계십니다. 지극히 온유하신 우리 어머니이신 거룩한 가톨릭 교회가 성당 봉헌 성무일도 찬미가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영원한 영광을 향하는 영혼은 누구나 스스로 영원한 집을 짓는 데 쓰일 가장 좋은 돌이 되겠다고 결심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는 장인은 먼저 그 집에 쓰일 돌들을 다듬어야 합니다. 그는 망치와 정으로 돌을 두드려 댑니다. 천상 아버지께서는 선택된 영혼들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그 영혼들을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의 지고한 지혜와 섭리로 영원한 집을 짓는 데 쓰이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영원한 영광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도록 세워진 영혼은 망치와 정으로 깎이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장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돌들을, 곧 선택된 영혼들을 그렇게 다듬어 쓰십니다. 이 망치와 정은 무엇을 다듬는 것이겠습니까? 나의 누이여, 그것은 암흑, 공포, 유혹, 영혼의 슬픔, 어떤 고통으로 드러나는 영적인 두려움, 그리고 육신의 괴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에 감사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영혼이 구원되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모든 아버지를 합하여 놓은 지극히 선하신 아버지의 호의에서 나온 이 은혜를 어찌 자랑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이 영혼의 의사에게 마음을 열고, 충만한 신뢰로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팔에 여러분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그분께서는 선택된 여러분이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마음의 내밀한 움직임으로 어느 모로든 여러분 안에서 기쁨과 은총이 작용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일어날 모든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때문에 모욕이나 불행을 겪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온 삶이 주님께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고 주님께서 더욱더 영광을 받으셨음을 여러분이 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지극한 호의를 베푸시는 이 신랑께서 숨어 계시더라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그것은 여러분의 불신을 벌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신뢰와 항구함을 여러모로 시험하시고, 나아가 여러분의 어떤 나약함을 고쳐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약함은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의인도 그 나약함 곧 죄의 허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도 일곱 번 쓰러진다”(잠언 24,16).
저를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그토록 고통을 당하는지 몰랐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석을 주셨다는 것을 몰랐다면, 저는 슬펐을 것입니다. 유혹과 함께 나쁜 의심도 던져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 스며드는 의심, 곧 여러분이 거룩한 부르심을 못 들은 것은 아닌가, 또는 신랑의 감미로운 초대를 거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을 내 버리십시오. 그 모든 것은 좋은 영만이 아니라 나쁜 영에게서도 나옵니다. 마귀의 장난으로, 여러분이 완덕에서 멀어지거나 적어도 완덕을 향한 여정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결코 낙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을 보여 주실 때마다, 여러분은 감사하십시오. 그분께서 당신을 감추시더라도, 그래도 여러분은 감사하십시오. 모든 것은 감미로운 사랑에서 나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영혼을 바치며, 예수님과 함께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하고 외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건물 전체가 잘 결합되어 있네. *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네.
○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네.
◎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특별한 은총으로 거룩한 비오 사제를 성자의 십자가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의 사제 직무를 통하여 주님의 크신 자비를 새롭게 베푸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시어 빛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비오신부님과 3일간의 암흑>
※ 이 계시의 내용은 파티마의 사도직인 푸른 군대에서 구입한 비오 신부님과 암흑의 3일간'이라는 소 책자의 내용입니다.]
일본 교또 레오 스타인박크 신부: 저 , 배 마태오 (규환): 역
이 계시는 50년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받으셨던 비오신부님(1887년 ~1968년)이 바티칸의 헤로스박크 위원회에 보낸 사신(私信)이다. 현 시점(비오신부님 탄생 100주년되는 1987년)에서 이 메시지에 관한 성 교회의 공식적인 견해는 일체 발표되지 않았다.
1949년 12월 31일 -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나의 성심의 위대한 사랑을 재차 당신에게 가르치게 된 이 시간을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인류에게 나의 사랑은 크건만, 특히 자기 자신을 나에게 봉헌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의 사랑은 진정 위대합니다. 그들이야말로 내 사랑의 성체를 형식적으로 받고 있는 수많은 지독한 불경한 중에 피난처이며 나의 위로이기도합니다.
기도하시오. 특히 1950년은 성년이므로 기도하시오. 기도하고 나에게 보상하여 주시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의 은총의 때를 무시하고 있기에 나는 그들에게도 갈 것입니다. 그 때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적에게 지배되지 못하게 기도 중에 인내하시오.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리시오.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으시오. 내 심판은 돌연 생각지 않을 때 그들의 위에 내리고 한 사람이라도 나의 손에서 도망하지 못하고 나는 모든 자를 찾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직한 사람을 지킵니다.
하늘의 태양, 달, 별들을 유의(留意)하시오. 그것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을 때에 그 날이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시오.
기도 안에 일치하시오. 그래서 파괴의 천사가 당신들의 문전을 지나쳐 가도록 마음을 쓰고 있으시오. 그 때가 짧아지도록 기도하시오.
나는 몇 번씩이나 인류에게 경고하여 바른 길로 돌아올 특별한 기회를 종종 주어 왔으나, 지금에야 사악함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징벌은 더 이상 연기할 수 없습니다.
나의 성심이 괴로워하고 피를 흘려도 나는 내 이름 때문에 그 징벌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든 인류에게 말하시오. 이러한 일들이 성취할 때가 왔다고, 사랑하는 자여, 신뢰하시오.나는 당신들 안에 있으며 내 왕국은 영광을 받아 나의 이름은 해돋이부터 해가 빠지는 곳까지 축복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왕국은 끝이 없습니다. 나는 성년을 맞이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신으로 인하여 당신들을 축복합니다. 아멘.
1950년 1월 23일 - 기도하시오. 보상하시오.
마음을 불태워 금욕을 실천하시오. 위대한 일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도하시오. 인류는 마치 가장 무도회가 악마의 결혼피로연에 가는 모양으로 크게 좋아하고, 축제같이 소란하지만 실은 지옥의 깊은 못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습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손을 빌려주시오. 죄를 측정하는 말은 꽉 차 있습니다. 소름이 끼칠 사건이 일어나고, 보복의 날은 가까워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가까우며 세계는 위장된 안전보장 안에 잠자고 있소.
신의 심판은 벼락치듯이 쳐 올 것이오. 신을 믿지 않는 이 사악한 인간들은 옛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지금의 죄악보다는 극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950년 1월 28일 - 집안의 창을 모두 가리시오. 밖을 보면 안되오.
축성된 초에 불을 켜시오. 그것은 며칠이고 어둠을 밝혀줄 것이오. 로사리오 기도를 하시오. 영적 성체 배령을 하시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시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우리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오.
많은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팔을 벌리든지 땅에 엎디어 기도하시오. 집 밖에 나가면 안되오. 자기 자신의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여 두시오. 자연의 힘이 떨며 움직이고 불이 비와 같이 내리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 것이오.
용기를 가지시오.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1950년 2월 7일 - 이 기간은 동물을 돌보시오.
나는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이와 같이 모든 동물의 창조자이며 보호자요. 나는 앞서 당신에게 몇 가지 증표를 줄 것이니, 그 때 동물에게 많은 먹이를 주어 두시오. 내가 선택한 사람들의 소유물, 즉 동물까지도 보호하겠소.
그 때가 지나간 후에도 그들의 생계의 수단이 되어야 함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뜰에 나오면 안되오. 동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뜰에 나와도 안되고, 집 안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오는 자는 죽으며 집안의 창은 완전히 덮어 가리시오.
선출된 백성은 나의 노여움을 보지 못하오. 나를 신뢰하시오. 그렇게 하면 나는 당신들을 지키겠소. 당신이 신뢰하기 때문에 나는 꼭 당신을 도우러 오겠소.
나의 재림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비를 보여 주겠소. 아주 비참한 징벌을 보면 그 때가 어떠한가를 잘 알 것이오.
이 임무를 집행할 나의 천사들은 벌써 날카로운 칼의 준비가 되어 있소. 천사들은 나를 비웃으며 계시를 믿지 않으려 한 모든 자들을 전멸시키는 것에 특별히 주위 할 것이오.
구름 안에서 '불'이 폭풍우 같이 내리고, 온 땅 구석구석까지 퍼질 것이오. 폭풍과 악천후와 벼락과 지진이 온 땅위에 일어나고, 2일간 계속되며 불 비가 계속될 것이오. 그것은 어느 아주 추운 날 밤에 시작하며 이러한 일들은 신이 창조주이심을 증명하시기 위함이오.
나에게 바라는 자 그리고 나의 말을 믿는 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나는 그들을, 또 나의 메시지를 널리 펴는 자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오. 은총 안에 있으며 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보호를 구하는 자들에게 위해는 일체 가하지 않겠소.
이 심판 날을 위하여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게 다음의 증표로서 당신에게 지시합니다. 그 밤은 아주 추우며 바람이 울부짓듯 불어오고, 잠시 후 벼락치는 소리가 들리면 문이나 창틀에 자물쇠를 잠그시오. 집 밖에 있는 사람과 말을 걸어도 안되며 십자가 앞에 엎드려 죄를 통회하고, 내 어머니의 보호를 기원하시오.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밖을 본다든가 해서는 안되는데, 이는 신의 노여움이 성스럽기 때문이오. 예수님은 우리가 신의 노여움을 그냥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그것은 신의 노여움은 공포에 떨면서도 가만히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오.
이 충고를 무시하는 자는 죽음을 당하오. 바람을 탄 독가스가 땅위에 고루 뿌려지고, 죄도 없으면서 괴로워하며 죽은 자는 순교자가 되고, 나의 왕국에서 나와 함께 살게 될 것이오.
악마가 승리를 거둘 것이오. 그러나 3일째 밤은 지진과 큰불이 끝나며 다음 날은 다시 태양이 빛나고 천사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위에 평화의 영을 퍼뜨릴 것이오.
천지창조 이후 신이 지상에 재림하실 때 들고 오시며, 이 대 환란(가까운 장래의 징벌)에 살아 남은 자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감사의 마음이 꽉 찰 것이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준비시키기 위해 나는 스위스, 벨기에, 스페인 등의 어느 사람을 선택하여 이 계시를 주었소.
1950년 성년에 많이 기도하시오. 로사리오 기도를 하시오. 단, 기도가 하늘에 닿도록 바르게 기도하시오.
곧 지독한, 이전에는 없었던 큰 재난, 이전에는 한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지독한 증벌이 땅위를 방문할 것이오. 1950년의 전쟁은 이런 일들의 전조가 되는 것이오.
사람은 이러한 일들에 무관심한가!
모든 기대에 반하여 지금이라도 곧 자가들 위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곧 인내하고 참지 않으면 안되오. 전대미문의 일들인데 그 준비에 대하여 어찌 그렇게 무관심할 것인가?
신의 저울의 추가 땅위까지 닿았소. 나의 아버지의 분노가 전 세계를 향하여 내리고, 나는 지금까지 종종해 온 것과 같이 재차 당신을 통하여 세계에 경고합니다.
인간의 죄는 이제 헤아릴 수 없게 부풀어올라 있으며, 즉 교회에서의 불경, 위장된 종교활동으로의 깊은 죄의 교만, 참다운 형제애의 결여, 천한 복장, 특히 여름의 휴양지에서는 더하며 세계는 죄악으로 가득 찾소.
이 대 재난은 번개 불 같이 땅위에 덮쳐오며, 그 때 아침의 태양의 빛은 어둡고 암흑으로 바뀔 것이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후에는 누구든지 집에서 나오던가 창으로 밖을 보아서는 안되오.
나 자신이 번개와 우레에 쌓여서 올 것이며 사악한 자들은 나의 성심을 바라볼 것이오.이 완전한 어두움 때문에 큰 환란이 일어나며 온 땅은 암흑에 쌓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공포와 절망으로 죽을 것이오.
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은 나의 성심의 은총을 받을 것이오. 신과 같은 자는 누구일까? 하는 부르짖음이 많은 사람들의 몸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그러나 많은 사람은 밖에 마른 풀과 같이 불에 타 버릴 것이오.
신을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할 것이오. 그것은 재난 뒤에 올바른 자가 새 출발 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 날 완전히 암흑이 시작되면 누구든지 외출하든지 창에서 밖을 보아서는 안되오.
암흑은 하루 낮, 밤 동안 계속되고 또 하루 한 밤 그리고 또 하루 한 밤, 그 다음 밤은 별이 빛나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태양이 빛날 것이오.
그 때는 봄이오!
암흑이 계속되는 동안 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올리브의 정원에서 잠자듯이 잠자서는 안되오. 끊임없이 기도하고 나에게 신뢰하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오.
나의 백성들을 모으시오. 지옥은 전 세계를 손에 넣었다고 믿을 것이오. 나는 다시 빼앗을 것이오. 만일 세계가 악행에서 정의로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이런 지독한 재난을 세계에 내리시는 것을 내가 가만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러나 나의 큰 사랑 때문에 이러한 고난은 역시 인류에 내리실 것이오. 많은 자가 나를 저주할 것이나 그래도 이 고난을 통하여 몇 천이라는 영혼이 구원받을 것이오.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나의 사랑의 깊이를 도저히 잴 수는 없을 것이오.
기도하시오! 기도하시오!
당신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 성 마리아, 성 요셉, 성 엘리사벳, 성 콘라도, 대천사 성 미카엘, 성 베드로, 성 소화 데레사, 거룩한 당신의 수호천사들이 중개자가 되어 주시니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시오.
빛이 돌아오면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보호받으실 것을 모두가 감사하시오. 황폐는 극심할 것이나 당신의 신인 내가 땅위를 깨끗하게 하여, 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니 신뢰하시오.
(비오 신부님의 메시지는 여기서 끝났다. 이 메시지는 비오 신부님이 계시받은 그대로다.)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bbs_view.asp?num=3961&id=105657&ref=48848&menu=4770